지록위마(指鹿爲馬)
중국 역사서 초한지(楚漢志)에 보면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있어요
이는 가리킬 지(指)에 사슴 록(鹿) 위할 위(爲)에 말 마(馬)자를 쓰는데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사람들을 농락하여 권세를 부린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지요
또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 남을 속이려 하는 짓이기도 하지요
중국의 조나라, 위나라, 초나라, 연나라, 제나라를 잇달아 무너뜨리고 기원전 221년 중국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진나라를 세우고 자손만대(子孫萬代)가 이어갈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는 자신의 덕이 삼황(三皇)보다 낫고 공적은 오제(五帝)보다 높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호칭(呼稱)를 왕(王)에서 황제(皇帝)로 바꾸었지요
이어 그는 자신이 첫 황제이므로 처음 시(始)자를 붙여 시황제(始皇帝)라 칭하라 했어요
그런 이후 아들을 이세황제(二世皇帝) 그 다음을 삼세황제(三世皇帝)라 부르도록 했지요
또 황제의 명(命)은 제(制), 령(令)은 조(詔)라 하고 짐(朕)과 옥새(玉璽)란 말도 황제만 사용할수 있도록 했어요
그는 승상 이사(李斯)를 시켜 천하제일의 명옥(名玉) 화씨지벽(和氏之璧)에
‘하늘에서 명을 받아 영원히 번창 한다’라는 뜻의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旣壽永昌)이라고 새긴 옥새를 만들라 하였지요
이렇듯 불로장생과 영원한 제국을 꿈꾸었던 진시황은
중국 대륙을 천하통일한지 11년만인 기원전 210년에 사망하고 말았지요
이 같이 하늘을 찌를 듯하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진나라도
2세 황제 호해(胡亥)에 이르러 15년만에 멸망하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진시황 사망후 5년을 넘기지 못하였지요
그 연유(緣由)는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죽자 측근 환관(宦官)인 조고(趙高)가
거짓 조서(詔書)를 꾸며 현명한 태자(太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리석은 호해(胡亥)를 세워
2세 황제(皇帝)로 삼았어요 현명(賢明)한 부소(扶蘇)보다 용렬한 호해(胡亥)가 다루기 쉬웠기 때문이지요
황제에 오른 호해(胡亥)는 천하(天下)의 모든 쾌락(快樂)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어리석었다고 하지요
그러면서 역심이 생긴 조고(趙高)는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2세황제 호해(胡亥)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폐하(陛下), 천하의 명마(名馬)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시오소서!!」라고 말하자
「승상(丞相)은 농담도 잘 하시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指鹿爲馬)'…
어떻소? 그대들 눈에도 이 사슴이 말로 보이시오?」
하면서 호해(胡亥)는 좌우의 신하(臣下)들을 둘러보았어요
그러자 간신 조고(趙高)가 나서며 「폐하(陛下) 이것은 사슴이 아니라
분명 말(馬)이 옵니다 제가 말이라는것을 보여 드리겠읍니다」하면서
신하들을 향해 「이것이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좌측으로 서시고
이것이 사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측으로 서시오」하였어요
그러자 분명 사슴인데도 말이라고 우기며 좌측으로 서는 간신배들이 많았고
"이것이 어찌 말이란 말이오? 사람을 속여도 유분수지..."하면서
우측으로 서는 소신있는 신하들은 몇몇 안되었지요
간신 조고(趙高)는 「폐하(陛下) 이것 보십시오!!
조정대신들이 거의다 말이라고 하지 않읍니까? 이것은 분명 말이옵니다!!」
그러자 2세황제 호해는 「허허 그런가? 그럼 말인가 보지!!」
하면서 간신 조고의 술책에 넘어가 사슴을 말이라 인정 하였지요
그 뒤 간신 조고(趙高)는 우측에 선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며
적폐청산 이라는 미명하에 모두 죽여 버렸어요
그러자 궁중(宮中)에는 조고(趙高)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지요
이때 만들어 진 말이 바로 "지록위마(指鹿爲馬)"이지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이지요
어쨌든 조고(趙高)는 이 어리석은 호해(胡亥)를 교묘(巧妙)히 조종하여 경쟁자인 승상(丞相)
이사(李斯)를 비롯 그 밖에 많은 충신(忠臣)들을 죽이고 스스로 승상(丞相)이 되어
조정(朝廷)의 실권을 장악했어요
그러나 환관(宦官) 조고(趙高)가 허수아비 황제를 세우고 스스로 승상(丞相)이 되어
조정(朝廷)의 실권을 장악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 했지만 천하(天下)는 오히려 혼란(混亂)에 빠졌지요
진(秦)나라 곳곳에서 조고 타도의 반란(叛亂ㆍ反亂)이 일어났고 도처의 지방관들은 등을 돌렸으며
시황제(始皇帝)가 전국을 통일한 이전인 전국시대처럼 혼란이 거둡됐어요
이때 나타난 영웅호걸이 바로 그 유명한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지요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군사(軍士)가 도읍 함양(咸陽)을 향해 진격(進擊)해 오자 조고(趙高)는
수습책으로 자신이 옹립했던 2세황제 호해(胡亥)를 죽이고
태자였던 부소(扶蘇)의 아들 자영(子孀)을 앞세워 3세 황제(皇帝)로 삼았어요(B.C. 207).
그러나 결국 조고(趙高)는 자신이 황제로 세운 자영(子孀)에게 주살(誅殺)당하고 이로인해
진나라는 멸망하게 되었으며 항우를 이긴 유방이 한나라를 재건하게 되었지요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보면 창업(創業)과 수성(守城))중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하였지요
창업은 난세에 백성의 지지를 얻는 일이기에 별로 어렵지 않으나 수성은 창업
이후 교만하고 방자해져 백성과 괴리되기 십상이므로 더 힘들다 했어요
창업시기에는 혼란하기 때문에 군주의 결단이 절실하고 수성에는
평온이 절실한 까닭에 국가의 안위와 덕치, 백성의 삶이 윤택해져야 하지요
국가의 안위가 위태롭고 백성이 궁핍하면 민심(民心)을 잃케 되지요 그래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어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믿음과 신의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국가가 존립할수 있는 근거는 먼저 경제가 활성화 되어 국민이 윤택해져야 하고
그 다음은 튼튼한 국방과 안보로 인해 국민이 안심힐수 있어야 하지요
이 두가지가 무너지면 믿음이 사라지고 법치가 무너지지요
법치가 무너지면 그 나라는 믿음과 신의가 무너져 존립할수 없게 되지요
그래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어요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하지요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가라도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하고
아무리 붉고 탐스러운 꽃이라 하여도 열흘을 넘기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어느 권력이든 역사와 과학과 법치를 무시하면 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 했어요
특히 이념(理念)에 치우쳐 국가의 정체성마져 뒤흔드는 정권이라면 더욱 버티기 힘들지요
어느나라나 최우선 과제는 감히 넘볼수 없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이지요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이 있어요
이는'백성은 물, '임금은 배'라는 뜻인데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지요
깊이 새겨들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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