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

추, 자가 들어가는 채소

하라배 2017. 11. 1. 11:57

♣ 추자가 들어가는 채소류 ♣

우리나라 채소류에는 추,자가 많이 붙지요

예를 들면 배추,상추,고추,부추,후추 등등이 있어요

그런데 이들 채소의 내력을 알고나면 의미도 있지만 재미있는 구석도 많아요

옛날부터 24절기중 입동(立冬)이 지나면 김장들을 하는데 이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도 지났고 다음달 초에는 입동(立冬)이 오지요


김장을 하려면 배추가 있어야 하는데 우선 먼저 배추와 상추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해요

이른 봄 제주도에 가면 유채꽃이 넘실거리는 풍광을 볼수 있어요

유채의 노란 꽃들은 남쪽에서 오는 봄을 마주하는 전령이지요

그런데 이 유채를 보고 배추와의 연관성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배추꽃을 본 적이 있나요? 역시 별로 많지 않아요

배추는 보통 씨를 사다 심고 꽃이 피기 전에 이미 수확하여 먹지요 하지만

가끔 남도 들판을 가다 보면 늦가을 배추를 심었던 밭에 상품 가치가 없어

수확하지 않은 배추가 밭에 그냥 남아 겨울을 이겨내고 꽃대를 올려 노란 꽃을 피우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배추꽃이 마치 유채꽃과 비슷하여 구분하기 힘들어요


강화도에 가면 대표적인 특산물로 자리 잡은 것이 순무이지요

강화도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려 하면 순무김치를 파는 상인들을 볼수 있어요

이제는 흔치 않은 김치라 지역의 특산물로 여기는 것이지만 이 순무가 예전에

 배추를 대신해서 김치를 담그던 주재료였음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요

그런데 이 순무가 장가를 갔어요 그러니까 유채가 순무한테 시집을 온 것이지요

그들이 합세하여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이 "배추"가 된 것이지요

우리나라에 들어오기는 순무가 유채보다 훨씬 먼저 들어 왔어요

순무는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에 자생하던 것이라 그 유래도 오래된 것이어서

호무라 부르던 무 보다도 더 오래된 작물이지요


유채는 지중해의 동부 연안과 지금의 터키인 소아시아 반도에서 살던 풀이었는데

이 유채가 6, 7세기경에 중국에 도입되어 순무한테 시집을 간 것이지요

이렇게 태어난 배추는 숭(菘)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처음 태어날 때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배추처럼 줄기가 크고 흰 채소가 아니었어요

여느 풀과 다름없이 녹색 이파리의 평범한 채소풀이 탄생한 것이지요

러나 농민들은 이 유채와 순무를 교배시키면서 더좋은 채소를 위해 개량 작업에 들어갔어요

차츰 개량이 진행될수록 줄기의 흰 빛깔이 도드라지고 단맛을 느낄수있는

채소로 변해가고 그에 따라 이 채소의 이름도 백숭(白菘),백채(白菜)라는 새로운 특징을

표현하는 이름이 붙었지요 우리의 배추라는 어원은 이 '백채(白菜)'가 변해서 된 것이지요

그런데 배추씨를 채취하여 다음해 다시 심으면 다시 순무로 변해가니 큰일이 아닐수 없었지요

그래서 종자를 계속 수입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중종실록》이나 《선조실록》에 보면 중국과의 무역품에 이 배추 종자(씨)가 들어있어요

우리는 육종 기술이 없었기에 중국에서 수입할수밖에 없는 종자였던 것이지요

을사늑약을 맺은 이듬해인 1906년에는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이 생기면서 우수한 품종을

들여와 배추의 육종 연구가 시행되었고 일본에서도 배추 씨앗을 수입했어요

이때부터는 중국에 의지하던 배추 종자를 일본에 기대게 되었지요

비로소 본격적인 결구배추의 시대가 온 것이지요


이 시기부터 배추는 이미 무를 넘어 김치의 주재료로 부상하지요

하지만 모든 김치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요

이때까지는 더위를 싫어하고 추워야만 잘 자라는 속성 때문에 생육기간이

긴 결구배추를 봄에는 먹을수 없었어요

다만 김장김치의 주종이 배추김치로 돌아선 것일 뿐이지요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되자 이 배추 농사에 다시 먹구름이 끼게 되었어요

종자 생산의 연구가 중단되고 일본으로부터의 종자 수입도 막힌 탓이지요

하지만 먹던 배추김치를 끊을수는 없는 일이었지요 다급해진 정부는 1950년에 일본에 있던

세계적인 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를 불러오게 되지요 우장춘 박사의 노력 끝에 1954년부터

국내에서 다시 배추 씨앗을 생산할수 있게 되었고

그 기술로 지금까지 김장김치를 담글수 있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우장춘 박사는 처자(妻子)를 일본에 두고 홀로 생활 할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반일감정이 심하여 정부가 처자가 일본인이라 입국을 허가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우장춘 박사는 결국 가족과 헤어져 연구를 거듭하며 후학을 길러내고

1959년에 고국에서 운명하고 말지요


그 개인적인 희생을 치른 덕분에 우리는 김장을 배추김치로 담글수 있었던 것이지요

올해 김장을 담그면서 우장춘 박사의 공로를 다시한번 상기해 봤으면 좋겠어요

또 그 먼 옛날 순무와 유채의 만남을 기억하려면 배추 뿌리를 살짝 맛을 보는것도 좋아요

배추 뿌리와 순무의 맛이 기가 막히게 닮았음을 알수 있을 꺼에요

아무튼 배추라는 이름의 어원은 중국의'백채(白菜)'가 변하여 배추가 되었지요

본래 우리가 많이 먹는 배추의 품종은 중국 북방지역이 원산지 이지요

다음은 은근초라 불리는 상추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해요


예부터 ‘가을 상추는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귀하고 맛있는

식품으로 고려때 원나라로 끌려간 궁녀나 시녀들은 나라를 그리워하여 뜰에 상추를 심고

먹을때 마다 망국의 한을 달랬다고 하지요

상추는 재배 역사가 매우 오래 되었는데 기원전 4500년경의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

작물로 기록될 정도이지요 기원전 550년에 페르시아 왕의 식탁에 올랐다는 기록도 있고

그리스·로마 시대에 중요한 채소로 재배하였다고 하지요

중국에는 당나라 때인 713년의 문헌에 처음 등장하고 한국에는 연대가 확실하지 않으나

중국을 거쳐 전래되었으며 중국의 문헌에는 "고려의 상추가 질이 좋다"는 기록이 있어요

현재는 한국·중국·일본·미국·영국 등 넓은 지역에서 재배되는데 재배되는 상추는 품종이

많이 분화되어 크게 결구상추(var. capitata), 잎상추(var. crispa) 배추상추(var. longifolia),

줄기상추(var. asparagina)의 4가지 변종으로 나뉘지요

한국에서는 주로 잎상추를 심으나 최근에는 결구상추도 많이 심고,

강원도와 경상도에서 많이 재배하지요

상추는 주로 샐러드나 쌈을 싸 먹는데 이용되고 겉절이로도 먹지요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여 빈혈 환자에게 좋으며 줄기에서 나오는 우윳빛 즙액에

락투세린과 락투신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진통과 최면 효과가 있어 상추를 많이 먹으면

잠이 오지요 또한 상추를 ‘은근초’라 부르기도 했는데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따르면 ’

상추가 신(腎), 곧 정력에 좋다’하여 상추를 많이 심고 적게 심음이 곧 그 집 마님의 음욕을

간접 시사하는 것으로 상추는 남에게 보이지 않게 심어야 했어요

이는 상추대를 자르면 솟아나는 하얀즙이 마치 남성의 정액과 비슷하다고 하여 생겨난 이야기라 하지요

그래서 '은근초'라 불리게 되었어요

상추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먹어 온 역사 깊은 채소로 고려시대에 상추로 밥을 싸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친숙한 채소였음을 알수 있지요

상추의 어원은 ‘날로 먹을 수 있다’ 하여 생채(生菜)가 변화한 것으로 보이나 한문 이름은

와거(萵苣)로, 송대(宋代)의 문헌인『청이록』에 의하면 “와국(萵國)에서 건너온 풀이라 하여

 와(萵)란 이름이 붙었다” 하고 “와국에서 사신들이 왔을때 수(隨)나라 사람들이 상추 종자를

비싸게 사들였기로 천금채(千金菜)라 부르기도 한다”고 하였지요

이러한 상추를 한방에서는“상추가 오장을 이롭게 하고 가슴을 시원하게 하며 원기를 돕고

근육이나 뼈를 튼튼하게 하고 구취를 없애고, 치아를 희게 하며, 혈맥이 잘 통하게 하여

산후에 젖이 잘 나오게 하고 이뇨작용을 하며, 창자를 이롭게 하여 열독(熱毒)이나

주독(酒毒)을 풀어 준다”고 하였지요

상추는 시원한 맛을 주는 한편, 특유의 단맛과 쓴맛이 있어 식욕을 잃기 쉬운 봄과

여름철에 먹으면 좋아요


고추는 고초(苦椒)라 하였으며 가지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나무이지요 온대지방에서는

겨울에 죽기 때문에 한해살이 풀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해 살이 나무 이지요

고추의 원산지는 아메리카인데 한반도에서 고추장을 최초로 담가 먹기 시작한 것은

조선에 고추가 전래된 16세기말~17세기초로 추정된다 하지요

고추의 전래시기 및 경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614년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근거한

것으로 만초(蠻椒)라 하여 일본을 거쳐 온 것으로서 ‘왜겨자’라고도 하였어요

1760년 이익이 정리한 것을 조카들이 출간한 백과사전 《성호사설》과 이규경의

방대한 60권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도 번초(蕃椒)라 하여 일본에서 도입되었고

그 시기가 선조 임진왜란 이후라고 하였지요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16세기 이전에도 우리나라에 고추장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일본에서 도입되었다는 설을 부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에서는 고추를 남성의

생식기관 특히 음경을 표현하는 유아어와 속어로 쓰이지요

고추자지, 자지, 좆, 꼬추라고도 부르며 "고추"와 "고추자지"는 음경을 표현하는 유아어와

속어로 사용되지만 "자지"와 "좆"은 현대에는 비속어로만 사용되지요

자지는 한자어 음경의 순수 우리말이지요

자지는 사람 남성의 성기를 뜻하며 좆은 동물 수컷의 성기를 이르는 말이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좆은 사람을 동물로 낮추어 부르며 저속하게 쓰이게 되었고

자지는 순수 우리말이 외면 받아 현대에 들어서는 "자지"와 "좆" 모두 비속어로 잘못 여겨지고 있어요

고추는 유아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에서는 음경과 페니스라는 전문용어의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자지"와 "좆"은 토박이 말이면서도 속어 또는 비속어로 사용되고 있지요

고추라는 말은 주로 할머니들이 손자들의 음경을 보고 하는 소리인데 성교육을 받기 이전의

미취학 아동들에게 할머니들이 "우리 손자 고추 얼마나 컷나 보자."라는

식으로 일종의 해학적으로 쓰였지요


옛날 이항복과 이황의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관 명칭에 관한 질문과 답변 내용에서 자지는 앉을때

감추어진다고 하여 좌장지(坐藏之)라 한 것인데 말하기 쉽도록 하기 위하여 "장(藏)" 자를 빼고

 "자지"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고 또 좆은 남성의 생식기는 양기(陽氣)를 지녀 "조(燥)"

자의 발음을 따라 조이라 한 것인데 이것이 발음하기 편하게 변하여 "좆"이 되었다는 설도 있지요

그러나 이항복과 이황의 남녀의 생식기관 명칭에 관한 질문과 답변 내용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은 어형이 유사한 한자어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후 그 한자어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실존인물을 등장시켜 적당히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며 전형적인 한자 부회에

불과하다고 하는 학자도 있어요

이 의견을 제시한 학자는 자지의 유래가 중국어 댜오즈(鳥子)에서 변음되어

자지로 정착된 중국의 차용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하였지요


다음은 부추 이야기 인데 부추는 동부아시아가 원산으로 중국 동북부에는 지금도 자생지대가

있으며 일본, 중국, 한국, 인도, 네팔, 태국, 필리핀에서 주로 재배하고 있어요

부추는 동양에서도 중국, 한국 및 일본에서만 식용으로 하고 있으며 서양에서는 재배되지 않아요

부추는 기원전 11C 중국의 서주(西周)시대의 시경(詩經)에 이미 제사에 사용하였다고

되어 있고 정월에 부추가 나왔다는 기록이 하소정(夏小正)에도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식용으로 된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기록으로는

1236년에 나온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이 처음이지요

일본에서도 1C경의 신선자경(新選字鏡)에 나오고 그 이후 본초화명(本草花名)에도 등장하지요

이와같이 부추는 동부아시아의 한, 중, 일에서 오래 전부터 재사, 약용, 식용 등의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짐작할수 있어요


그런데 부추에는 정력(精力)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예로부터 부추는 부부간에 정을 오래도록 유지시켜 준다하여 정구지(精久持)라 했으며

신장을 따뜻하게 하고 생식기능을 좋게 한다고 하여 온신고정(溫腎固精)이라 했지요

그리고 남자의 양기를 세운다 하여 기양초(起陽草)로 불렀으며 과부집 담장을 넘을 정도로

힘이 생긴다 하여 월담초(越擔草)라고도 하였지요 또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면

초가삼간이 무너진다고 하여 파옥초(破屋草)라고도 했으며 장복(長服)하면 오줌줄기가 벽을

뚫는다고 하여 파벽초(破壁草)라 부르기도 했어요


"봄 부추는 인삼 녹용과도 바꾸지 않는다"말과 "부추씻은 첫 물은 아들 안주고

사위준다"는 말도 있는데 아들에게 주면 좋아할 사람은 며느리이니 차라리

사위에게 먹여 딸이 좋도록 하겠다는 뜻이지요

또 "봄 부추 한단은 피 한방울보다 낫다"는 말도 있으며 "부부 사이가 좋으면 집

허물고 부추심는다"는 말도 있을 정도 이지요

그리고 부추는 체력이 떨어져 밤에 잘때 식은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에게도 좋고

손발이 차거운 사람, 배탈이 자주나는 사람에게도 효험이 있다 하지요


후추는 호초(胡椒)라고도 하며 후추과의 덩굴 식물로 그 열매를 양념으로 쓰지요

인도 남부의 말라바(Malabar)해안이 원산지인데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발견에 나서게 한 향신료이기도 하지요

후추는 선사시대부터 인도에서 양념으로 쓰였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후추는

주요 무역 상품이었으며 종종 실물화폐로 사용되어 "검은 금"이라 불렸지요

청년사에서 만든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 의하면 조선에서도

후추는 연회에서 손님이 후추를 상에 올리면 기녀들이 다툴 만큼 인기가 있었어요

"후추로 지불하는 지대"는 오늘날에도 무역의 거래조건으로 존재한다 하네요


그럼 여기서 다시한번 채소의 이름들을 정리하면 배추는 중국어로 백채(白菜)이지요

백채(白菜)를 '백채'라 부르지 않고 '배추'라 부른것은 백(白)의 고대음이 '배'이고 채(菜)의

고대음이 '추'이기 때문에 배추가 되었지요


또 상추는 중국어로 생채(生菜)이지요

대개 우리말 '생채'는 오이나 무같은 채소를 채썰어

양념에 무친것을 사전에는 생채(生菜)라고 나와 있지요

중국말 생채(生菜)가 우리나라로 건너와 '상추' 또는 '상치'가 된것은 생(生)의 고대음이

 '상'이고 채(菜)의 고대음이 '추' 또는 '치'이기 때문에 상추 또는 상치가 된 것이지요


부추는 서울만 제외하면 모두 정구지라고 하였는데 유독 서울만 부추로 부르는 까닭은

서울에 한자를 쓰는 사대부들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부추는 중국말로 구채(韭菜)라고 하는데 이것이 서울 사람들이 '부추'라고 부른 까닭은

우리말에 'ㄱ'과 'ㅂ'을 헷갈리기 때문이지요

고구려를 '복클리'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래서 구(韭)의 고대음을 '부'로 읽고

채(菜)의 고대음이 '추' 이기 때문에 부추가 되었지요


푸성귀는 아니지만 중국에서 후추는 호초(胡椒)라고 하고 대추는 대조(大棗)라고 하지요

이 모두가 우리 한글에는 70%가 한자어 이기 때문에 한자어의 영향이 크다고 할수 있어요

그런데 ‘채소’란 배추·상추·쑥갓 ·양파 등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이나 들에서 자라는 나물을 뜻하지요

이 채소를 어떤 이들은 ‘야채’라 부르기도 하지요


그럼 과연 ‘채소’와 ‘야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채소(菜蔬)’는 나물을 뜻하는 ‘채(菜)’와 ‘소(蔬)’가 결합한 한자어 이지요

‘야채(野菜)’는 들을 뜻하는 ‘야(野)’와 나물을 뜻하는 ‘채’가 합쳐진 말이구요

둘은 의미상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채소’보다 ‘야채’가 많이 쓰이는데 이는

‘야(野)’자 때문에 ‘야채’가 더 구체성을 띠는 용어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

야채’는 일본식 한자어 이지요 중국에서는 ‘소채’나 ‘채소’란 말을 사용하고

우리나라도 옛날부터 주로 ‘채소’라는 말을 써 왔어요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독특한 한자어인 ‘야채(야사이·やさい)’가 일제강점기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슬며시 ‘채소’를 밀어냈지요 물론

‘야채’가 일본식 용어인지 모르고 사용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자기자신도 모르게 스며드는 정풍운동(整風運動) 때문이지요 일제가

우리 한민족의 혼을 빼앗으려 했던 국민순화운동은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까지 영향을 주었어요

만일 이 사실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안다면 오랫동안 써 온 ‘채소’란 말을 버리고

일본식 이름인 ‘야채’로 부를 이유가 없지요


그래요 ‘채소’도 좋지만 ‘남새’ ‘푸성귀’ 등 순수 우리말로 쓰면 더욱 좋지요

그러나 우리가 순우리말처럼 믿고 있는 '배추'와 '상추'와'부추'는 그 어원이

한자말이지만 그 말을 버릴수는 없지요

이것은 우리 한글의 70%는 한자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쑥, 질경이, 냉이, 씀바귀, 꼬돌빼기, 민들레, 정구지, 머위,

쇠비름 들과는 그 느낌이 너무 다르지요


그래서 순수 한글과 한자는 반드시 병행되어야만 진정한 우리말을 승화시킬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글전용만 고집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영원히 노벨문학상을 받을수 없다 하네요

그 이유는 한글만 전용하면 언어의 깊이 즉 심도(深度)가 낮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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