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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함을 안다는것(정관정요貞觀政要) ♣ 역대 중국 황제 중 당태종 이세민은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인물이지요 그의 치세는 당나라의 정치,경제,문화,예술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성세를 누렸어요 고구려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무릎을 꿇었지요 그래서 당태종이 다스리던 시대를 정관지치(貞觀之治)라 칭하지요 중국 역사상 모든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군의 치세를 이루었다는 것이지요 하여 오늘은 당태종을 다룬책「정관정요(貞觀政要), 부족함을 안다는 것」을 살펴 보기로해요 그의 통치방법는 부국강병(富國强兵)과 예의염치(禮義廉恥)였어요 부국강병이란 하드웨어에 예의염치란 소프트웨어가 더해졌던 것이지요 물론, 부국강병이 우선이고 나라가 부강해야 염치도 살아난다고 생각했어요 통치방법은 군신공치(君臣共治)였지요 거대한 제국을 혼자 힘으로 다스릴수 없으니 군주와 신하가 함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위한 원칙은 크게 세가지로 나뉘는데 첫째, 과감히 직언할것을 적극 권장했어요 둘째, 공자처럼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을 실천했지요 역사를 통해 흥망성쇠의 이치를 터득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수불석권(手不釋卷)이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평생 열심히 진리(眞理)를 탐구(探究)하는 모습이지요 셋째, 쉬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자세였어요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스스로 힘써 노력하기를 쉬지 않는다는 뜻으로 밤낮으로 수양(修養)하여 중단함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지요
특히 첫째 배경인 과감한 직언은 위징(魏徵)이라는 충신이 담당하였지요 마치 우리나라 고려 광종때 서필(徐弼)이라는 충신과 비슷했어요 그 래서"정관정요"는 주로 당태종 이세민과 위징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지요 위징(魏徵)은 원래 당태종이 죽인 친형 이건성의 핵심참모였어요 위징은 충언의 대명사라 할 정도로 사사건건 당태종이 하는 일에 브레이크를 걸었지요 충언의 요체는 거안사위(居安思危)였어요 편안할때 위기를 생각하고 근면히 정사에 임해야 한다는 뜻이었지요 당태종이 즉위한 해에 모든 백성들의 징집명령을 내렸는데 위징이 이 조서를 거머쥔채 발송하지 않았어요 일종의 항명이었지요 태종이 크게 꾸짖자 위징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연못의 물을 말린뒤 물고기를 잡으면 모든 물고기를 잡을수 있지만 이듬해에는 물고기를 볼수 없고 숲을 태워 사냥을 하면 모든 짐승을 잡을수는 있지만 이듬해에는 짐승을 찾을수 없습니다 모든 백성이 모두 군대를 가면 세금과 각종 부역은 누구에게서 취할 것입니까? ” 당태종은 대꾸하지 못했지요 하루는 위징 때문에 속이 상한 당태종이 화(火)가 머리끝까지 나서 황후가 있는 내실에 들었어요 부인 장손황후(長孫皇后)가 화를 낸 연유를 묻자 “그 시골 촌놈이 조회에서 또 짐에게 대들었소 그를 죽이지 않으면 마음속의 한을 풀 방법이 없을것 같소”라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장손황후가 당태종에게 절을 하며 축하하였어요 그가 당혹해 하며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지요 “군주가 성군이면 신하도 충신이라 했습니다 지금 폐하가 성군으로 계시는 까닭에 위징같은 신하가 직언을 하는 겁니다. 천하가 이런 성군을 얻었으니 폐하 곁에 있는 첩으로서 어찌 이를 축하하지 않을수 있겠나이까? ” 당태종은 크게 기뻐하며 노기를 가라앉혔다 하지요 만약 부인이 이런 말을 하지않고 대신 위징을 죽이라고 베갯밑 송사라도 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당태종은 화가 치밀어 위징을 죽였을거지요 어찌보면 당태종은 처복(妻福)도 있는 사람인것 같아요 충신(忠臣)보다 양신(良臣)이 더 좋은것이라 했지요 하루는 위징이 당태종에게 “신을 양신으로 만들고 충신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러자 당태종이 양신과 충신의 차이점을 묻자 이렇게 답하였지요. “양신(良臣)은 스스로 아름다운 명성을 얻고, 군왕도 숭고한 칭호를 누립니다 자손 만대 부귀영화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충신(忠臣)은 자기는 죽고 군왕은 악명을 뒤집어씁니다 집안과 나라가 모두 큰 상처를 받지만 오직 혼자만이 충신의 명예를 누립니다. ” 위징(魏徵)은 양신(良臣)의 전형이었지요 직언을 서슴지 않았지만 이는 주군인 당태종의 위신과 덕망을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그런 위징이 죽은후 당태종은 이렇게 탄식하지요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하게 할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성쇠와 왕조교체의 원인을 알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득실을 알수 있다 짐은 일찍이 이 세가지 거울 덕분에 허물을 막을수 있었다 지금 위징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거울 하나를 잃고 말았도다 ” 여러분은 창업(創業)과 수성(守城))중 어떤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시나요?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답이 있어요 하루는 당태종이 그 질문을 하였지요 "창업과 수성중 어느것이 더 어려운가? " 그러자 방현령은 적을 공파하여 항복을 받고 싸워 이겨야 세상을 평정할수 있어 창업이 더 어렵다고 하였지요 그러나 위징은 “수성이 더 어렵다.”고 답했어요 이유를 묻자 위징은 이렇게 대답했지요 “창업은 난세에 백성의 지지를 얻는 일이기에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성은 창업 이후 교만하고 방자해져 백성과 괴리되기 십상이므로 더 힘듭니다 역대 수많은 왕조가 창업을 이루었으나 오래가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업의 시기에는 어떠한 계기를 기반으로 하지만 수성의 시기에는 덕치에 기초한 왕도를 구사하는게 바람직하다 하지요 창업시기에는 혼란하기 때문에 군주의 결단이 절실하고 수성에는 평온이 절실한 까닭에 국가의 안위와 덕치, 백성의 삶이 윤택해져야 하지요 국가의 안위가 위태롭고 백성이 궁핍하면 민심(民心)을 잃케 되지요 그래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어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또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이 있어요 이는'백성은 물, '임금은 배'라는 뜻인데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지요 깊은 강물은 언제나 소리없이 조용히 흐르지요 그러나 거짖과 선동, 억압과 멸시, 환난과 핍박이 점철되면 더이상 참지 않아요 천둥번개가 울고 질풍노도(疾風怒濤)가 몰아치면 배는 갈길을 잃고 결국엔 뒤집어 지게 되지요 그래서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 했어요 ‘군주민수(君舟民水)’는 순자(苟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인데 이로서 권력를 잡은 사람들은 반드시 새겨 들어야할 대목이지요 그래서 성군이라 칭하는 당태종은 군신공치(君臣共治)를 몸소 실천 하였지요 하군(下君)은 본인 한 사람의 지혜와 힘만을 사용하지요 중군(中君)은 몇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힘을 모두 쓰게하지요 그러나 상군(上君)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지혜를 모두 발휘하게 한다 하지요 그래서 상군(上君)곁에 있는 자는 모두 스승이고 중군(中君)곁에 있는 자는 모두 친구이고 하군(下君)곁에 있는 자는 모두 시종(侍從)이라 했어요 진정한 리더라면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무엇이든지 배우려고 하는 자세 이것이 정관정요(貞觀政要)의 핵심(核心)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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