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秋夕)의 어원(語源), 유래(由來), 풍속(風俗), 시절음식(時節飮食)
1.추석(秋夕)의 어원(語源)
추석은 우리나라 4대명절의 하나로 한가위,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한다. 한가위의 한은 '하다(大·正)'의 관형사형이고, 가위란 ‘가운데’라는 뜻이다.
‘가운데’는 ‘갑다’의 어간 ‘갑’과 관형사형 어미 ‘‘’과 ‘’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는데 변화하는
과정에서 ‘가’가 되고, 그걸 음차표기하면서 ‘가배(嘉俳)’라는 말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가’는 다시 ‘가위’로 변형되어 ‘한가위’가 된다. 지금도 신라의 고토(故土)인 영남지
방에서는 '가운데'를 '가분데'라 하며, '가위'를 '가부', '가윗날'을 '가붓날'이라고 한다.
또 8월 초하루에서 보름께까지 부는 바람을 "8월 가부새 바람 분다"라고 한다. 이로써 미루
어 볼 때 가뷔·가부는 뒷날 가위로 속전(俗轉)된 것으로 알 수 있으니, '추워서'를 현재에도'
추버서'로 하는 것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가위란 8월 중에서도 정(正)가운데란 뜻이니, 정중심(正中心)을 우리가 '한가분
데' 또는 '한가운데'라고 하듯이 '한'은 제일(第一), 큰(大)의 뜻 이외에도 한(正)의 뜻이 있음
도 알 수 있다.
한가위를 추석, 중추절(仲秋節·中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한것은 훨씬 후대에와
서 생긴 것이다. 즉 한자가 전래되어 한자 사용이 성행했을 때 중국 사람들이 '중추(中秋)'니
'추중(秋中)'이니 하고,
'칠석(七夕)'이니 '월석(月夕)'이니 하는 말들을 본받아 이 말들을 따서 합하여 중추(中秋)의
추(秋)와 월석(月夕)의 석(夕)을 따서 추석(秋夕)이라 한 것으로 생각된다.
2.추석(秋夕)의 유래(由來)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에 대
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사회에 있어 날마다 세상을 밝혀주는 태양은 당
연한 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 번 만월(滿月)을 이루는 달은 고마운 존재였다. 밤이 어두우면 맹수의 접근도 알
수 없고 적의 습격도 눈으로 볼 수가 없기에 인간에게 있어 어두운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
상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만월은 인간에게 있어 고마운 존재였고, 그 결과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
게 되었다.
그런데 만월의 밤중에서도 일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8월 15일인 추석이 큰 명절로 여
겨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고 먹고 마시고 놀면서 춤추었으며, 줄다리기, 씨름, 강강수월래
등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고대에 만월을 갈망하고 숭상하던 시대에 이미 일 년 중에서 가장 달이 밝은 한가
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고,
후에 와서 의식화(儀式化)되어 명절로 제정(制定)을 보게 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라할
수 있다.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잘 나타나 있다."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
서기 32년)에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 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
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 가지고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것을 이
를 가배(嘉俳)라 한다."고 하였고,
또 "이때 진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뒷날 사람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
會蘇曲)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회소곡은 온 나라 안에 퍼져서 나중에는 신라의 유명한 곡이 되어 전하였다 하나,지금 그
노래는 전하지 아니한다. 길쌈의 협동 작업은 지금도 두리삼, 또는 두레삼이라고 하여 영남
지방 일대에 그 유속(遺俗)이 남아 있다.
3.추석(秋夕)의 풍속(風俗)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伐草), 성묘(省墓), 차례(茶禮), 소 놀이, 거북놀이,강
강술래, 원 놀이, 가마싸움, 씨름, 반보기, 올게심니, 밭고랑 기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벌초(伐草)와 성묘(省墓)
추석에 조상의 무덤에 가서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 주는데 이를 벌초라 한다.
옛날 조상의 묘를 풍수설에 의하여 명당에 쓰기 위하여 몇 십리 먼 곳에까지 가서 쓰는 수가
많았고, 또 묘를 쓴 다음 이사를 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묘가 집 근처가 아니라 먼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추석을 맞이하여서는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이 자손의 효성의 표시와 도리로
여겼다.
한가위 때에 성묘를 와서 벌초를 안했으면 보기에도 흉할 뿐만 아니라 불효의 자손을두었거
나 임자 없는 묘라 해서 남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2)차례(茶禮)
추석 이른 아침에 사당을 모시고 있는 종가(宗家)에 모여 고조(高祖)까지의 차례를 지낸다.
차례 지내는 절차가 설날과 다른 것은 흰 떡국 대신 메[밥]를 쓰는 점이다.
조상에 대한 추원보본(追遠報本)과 천신제(薦新祭)를 겸하였기 때문에 제물은 신곡으로 만
들어 진열된다. 고조 이 상의 윗대는 10월에 시제라 해서 묘에서 제사를 지낸다.
3)강강술래
추석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놀이이다.1966년 2월1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해마다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수십 명씩 일정한 장소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형으로 늘어서서,‘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
면서 뛰노는 놀이이다.
강강술래를 할 때는 목청이 좋은 여자 한 사람이 가운데 서서 앞소리[先唱]를 부르면, 놀이
를 하는 일동은 뒷소리[合唱]로 후렴을 부르며 춤을 춘다.
유래는 임진왜란 때, 당시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인 이순신(李舜臣)이 수병을 거느리고 왜
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적의 군사에게 해안을 경비하는 우리 군세의 많음을 보이기 위하여,
또 왜군이 우리 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특히 전지(戰地) 부근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해안지대 산에 올라,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돌면서 ‘강강
술래’라는 노래를 부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싸움이 끝난 뒤 그곳 해안 부근의 부녀자들이 당시를 기념하기 위하여, 연례행사로서 ‘강강
술래’ 노래를 부르며 놀던 것이 전라도 일대에 퍼져 전라도 지방 특유의 여성 민속놀이가 되
었다.
‘강강술래’라는 말은 한자의 ‘强羌水越來’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말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강강’의 ‘강’은 주위 ·원(圓)이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고, ‘술래’는 한자어로 된‘巡邏(순라)’에
서 온 말로서 ‘경계하라’는 뜻이니,
이는 ‘주위를 경계하라’는 당시의 구호인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주위의 뜻인 ‘강’이 둘 겹
친 것은 특히 주위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술래’가 ‘수월래’로 들
리며,
그렇게 기록되기 쉬운 것은, 진양조(晋陽調 또는 진양)로 길게 뽑을 때 ‘수월래’로 들리기때
문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므로 표기는 ‘강강술래’라고 하는 것이 옳다.
4)소 놀이
지방에 따라 이름과 놀이 시기가 다르다. '소먹이 놀음', '소 놀이 굿', '나무 쇠 놀음'이라고도
한다.
소를 만드는 재료는 한지(韓紙)에 흙빛 색 물감을 칠하고, 들기름을 먹인 것인데 장년(壯年)
두 사람이 들어갈 만하게 큰 소를 만든다. 그 속에 앞이 되는 한 사람과 뒤가 되는 한 사람이
들어가 허리를 구부린다.
그러면 뒷사람이 두 손으로 앞사람의 허리를 껴안고 소걸음같이 걸으며 한 사람의 소몰이꾼
에게끌려 같이 가는데, 뒤에는 일행으로서 농악대가 뒤따르며 마을의 여러집을 돌아다닌다.
비교적 부유한 집을 찾아가서는 소 울음소리를 내고, 앞에서 소를 끄는 소몰이가 대문을 두
드려, "이웃집 소가 배가 고파서 왔습니다. 짚여물과 쌀뜨물을 어서 좀 주십시오?"하며 소울
음소리를 내면,
그 집 주인이 나와서 그 사람소와 일행을 대문 안으로 맞아들인다. 그러면 일행은 그집 마당
에서 한바탕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놀이를 벌인다.
이윽고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이 나오고 이들 일행은 밤이 이슥할 때까지 마을의 여러 집을 돌
아다니면서 논다.
이 놀이는 주로 경기와 황해도 지방에서 성행하던 것인데, 8월 한가윗날 하기도 하고, 또 놀
이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5)씨름
우리나라 전통적인 남자 운동경기의 하나로 한문으로는 각희, 각력,각저라고 부릅니다.넓은
마당에서 허리와 다리에 띠나 삽바를 두른 두 장정이 마주 꿇어 앉아
각기 한 손으로는 다리의 띠를 잡은 다음 심판관의 호령에 의해 동시에 일어나 먼저 상대방
을 넘어뜨림으로써 승부를 결정하는 경기입니다.
만주 퉁구에 벽화로 그려져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구려 때에도 있었음을 알 수있고, 또 고
려사에 의하면 충혜왕은 씨름을 즐겨 동왕 5년(1334) 2월과 7월에 이를 관람한 기록이나타
난 것으로 보아 고려에서도 성행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후 경향 각지에서 남자들의 놀이로 단오, 백중날, 한가위, 농한기 등에 행해졌으며 특히단
오절에는 여자들의 그네뛰기와 함께 연중행사로 성대히 거행 되었습니다.
씨름은 남성을 위한 체육경기 적 민중오락이며, 가장 서민적인 남성놀이입니다. 4세기 말의
고구려 <씨름무덤>의 내용으로 미루어 우리는 일찍부터 이를 즐겨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나라 씨름의 뿌리는 몽골로서 중국을 거쳐 들어왔으며 일본 씨름(스모우)의 바탕이 되
었습니다. 씨름을 하는 방식은 샅바를 매고 한쪽 무릎을 꿇어 서로 상대방의 허리와 다리를
잡아 쥔 다음 동시에 일어나서 힘과손발의 기술을 발휘하여 먼저 상대방을 넘어뜨리면 이기
면 됩니다.
보통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쥐고 왼손으로 상대방의 샅바를 잡는 데 이것을 바른씨름
이라고 하고 손잡는 것이 반대인 것을 왼씨름이라고 합니다. 경기의 기술로는 안걸이, 배치
기,
발걸이, 둘러치기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씨름판이라 하여 주로 백사장의 원형 판에서 이루
어집니다. 또한 우승자에게 황소를 상으로 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6)거북놀이
수숫대를 벗겨 거북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속에 2명(앞에 1명,뒤에 1명)이 들어가서 마치 거
북처럼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노는 놀이이다.
거북 앞에는 거북몰이가 거북의 목에 줄을 매어 끌고 가고, 그 뒤에는 농악대가 꽹과리 ·북 ·
소고 ·징 ·장구 등 타악기를 치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돈 다음, 비교적 부유한 집을 찾아가는데,
대문 앞에서 농악대가 농악을 울린 다음 거북몰이가 “이 동해 거북이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하면, 주인이 나와서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어서들어오
십시오.” 한다.
그리하여 그 집 마당에서 한바탕 춤을 추면서 논다. 이 때 일행 가운데 노래를 잘 부르는 사
람(대개 꽹과리 치는 사람이 한다)이
“거북아 거북아 놀아라/만석 거북아 놀아라/천석 거북아 놀아라/이 집에사는 사람 무병장수
하사이다./이 마을에 사는 사람 무병장수 하사이다.”라고 축복의 주사(呪詞)를 부르는데,
한 구절이 끝날 때마다 꽹과리를 친다. 그렇게 한바탕 놀다가 거북이 땅바닥에 엎드려 움직
이지 않는다. 그러면 거북몰이가 ‘쉬이’ 하고 손을 저어 춤과 음악을 중단시키고 주인을향하
여,
“이 거북이 동해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오느라고 지쳐 누웠으니, 먹을 것을 좀 주십시오.”한
다. 주인집에서는 떡 ·과일 ·술 ·밥 ·반찬 등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내놓는다.
일행은 음식을 먹은뒤,잠시 쉬었다가 거북몰이가 거북을 보고, “거북아, 음식도먹었으니 인
사나 하고 가자” 하면, 거북이 집주인을 향하여 넓죽 절을 한 후 한바탕 뛰어놀다가 다른 집
으로 간다.
이렇게 차례로 큰 집을 돌아다니며 즐겁게 보낸다. 거북놀이도 지방에따라 약간의 차이가있
다. 경기 광주 지방을 일례로 들면, 거북이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 것을,
집주인이 보면 거북몰이가 배가 고파 떡이 먹고 싶어 그런다고 말한다. 그러면 집주인이 음
식을 차려 내놓는다. 그리고 거북을 만드는 재료도 수숫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왕골이나 만초(蔓草), 나뭇잎 등을 사용한다. 거북은 바다 동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 살고, 또
병이 없는 동물로 알려져 있어,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이다.
거북놀이는 거북처럼 마을 사람들의 장수(長壽)와 무병(無病)을 빌고, 또 마을의 잡귀 ·잡신
을 쫓는 데서 발생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7)원 놀이·가마싸움
옛날 서당 교육은 훈장을 초빙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 명절이 되면 훈장도 고향에 가서 차
례 성묘를 하게 되므로 서당은 며칠을 쉬게 되고 학동들은 자유롭게 놀 수가 있었다.
이럴 때에 학동들에 의해서 원 놀이와 가마싸움이 있게 된다. 원 놀이란 학동들 중에서 공부
를 많이 했고 재치 있는 사람을 원님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학동들 은 백성이 되어 원님께
소장을 내어 그 판결을 받는 놀이인데,오늘날의 대학에서 행해지는 모의재판과 그성격이 유
사하다. 이때에 현명하고 지혜로운 원님은 사건을 잘 해결하지만 서투른 원님은 백성들의
놀림감이 된다. 장차 과거에 등과해서 벼슬을 하고 백성을 다스려야할 학동들의 놀이로서는
매우 적격이었다.
가마싸움도 학동들이 주가 되어 행하여졌다. 훈장이 없는 틈을 타서 가마를 만들어 이웃 마
을 학동들과 또는 이웃 서당의 학동들끼리 대결을 하는 놀이이다.
가마를 끌고 넓은 마당에 나아가 달음질해서 가마끼리 부딪혀 부서지는 편이 지게되는데 이
긴 편에서 당년에 등과가 나온다고 한다.
8)반보기
추석이 지난 다음 서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일자와 장소를 미리 정하고 만나는 것을 반
보기라 한다. 옛날에 시집간 여자들은 마음대로 친정 나들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녀 사이에 중간 지점을 정해서 서로 즐기는 음식을 장만하여 만나 한나절 동안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회포를 푸는 것이 반보기인 것이다.
또 한 마을의 여인들이 이웃 마을의 여인들과 경치 좋은 곳에 집단으로 모여 우정을 두터이
하며 하루를 즐기는 수도 있다. 이때에 각 마을의 소녀들도 단장하고 참여하게 되므로 자연
스럽게 며느릿감을 선정하는 기회가 되기도한다.반보기란 중로(中路)에서 상봉했으므로 회
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9)올게심니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베어다가 묶어 기둥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고 한다.
올게심니를 할 때에는 주찬(酒饌)을 차려 이웃을 청해서 주연을 베푸는 수도있다. 올게심니
한 곡식은 다음해에 씨로 쓰거나 떡을 해서 사 당에 천신하거나 터주에 올렸다가 먹는다.
올게심니를 하는 것은 다음해에 풍년이 들게 해 달라 는 기원의 뜻이다.
10)밭고랑 기기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8월 14일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연령 수대로 밭고
랑을 긴다. 이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고 하는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그 아 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된다는 것이다.
4.추석(秋夕)의 시절음식(時節飮食)
추석은 시기적으로 곡식과 과일 등이 풍성한 때이므로 이즈음에는 여러 가지 시절 음식이있
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제찬을 준비하는데, 설날의 제찬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추수의 계절 이라 햇곡식으로 밥과 떡, 술을 만든다. 철이 늦은 해에는 미리 밭벼[山稻
]를 심었다가 제미(祭米) 로 쓰는 일도 있다. 이렇게 햅쌀로 밥을 지으면 맛이좋고 기름기가
있으며, 떡도 맛이 좋다.
1)송편
추석의 대표적인 절식으로는 송편을 빼놓을 수가 없다. 송편 속에는 콩·팥·밤·대추등을 넣는
데, 모두 햇것으로 한다. 열나흘 날 저녁 밝은 달을 보면서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만드는데,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며,잘못 만들면 못생긴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고해
서 처녀, 총각들은 송편을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또 임신한 여자가 태중의 아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궁금할 때에는 송편속에 바늘이나 솔잎
을 가로 넣고 찐 다음 한쪽을 깨물어서 바늘의 귀 쪽이나 솔잎의 붙은곳을 깨물면 딸을 낳고
바늘의 뾰족한 곳이나 솔잎의 끝 쪽을 깨물면 아들을 낳는 다고 하여, 이를 점치기도한다.특
히 올벼로 만든 송편은 올벼 송편이라 부른다.
2)술(酒)
추석의 차례 상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것이 바로 술이다. 추석 술은 백주(白酒)라고 하
는 데, 햅쌀로 빚었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라고도 한다.
추석 때는 추수를 앞 둔 시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풍족해진다. 사람들의 인심 또한
후해서 추석 때에는 서로 술대접을 하는 수가 흔하다.
3)닭 - 황계((黃鷄)
또 이때의 가장 넉넉한 안주로 황계(黃鷄)를 들 수있는데, 봄에 알을 깬 병아리를 길러서 추
석 때가 되면 잡아먹기에 알맞게 자란다. 또 옛날에는 명절에 어른에게 선사하는 데에 닭을
많이 썼다.
친정에 근친하러 가는 딸은 닭이나 달걀꾸러미를 가지고 갔으며, 경사가 있을때에도 닭을선
물했으며,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손쉬운 닭을 잡아 대접하였다. 특히 사위가 찾아오면 장
모는 닭을 잡아 대접하는 일이 흔했다.
4)녹두 나물. 토란국
녹두 나물과 토란국도 추석의 절식이다. 녹두 나물은 소양(消陽)한다고 하지만, 잔치상에 잘
오르고, 토란은 몸을 보한다고 해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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