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

노비(奴婢)와 머슴

하라배 2019. 10. 27. 13:07

노비(奴婢)와 머슴



우리의 역사속에는 노비와 머슴이란 것이 있었어요

노비(奴婢)는 전근대사회에 존재했던 최하층 신분의 하나로

보통'종(奴)'이라 불렀는데 노(奴)는 남자종, 비(婢)는 여자종을 말함이지요


노비(奴婢)와 비슷한 말로 노예(奴隷)라는것도 있었지요

단지 주인에 대해 종속관계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수있지만 노비와 노예는 큰 차이점이 있어요

한마디로 노비는 약간의 인권과 자유가 있지만 노예는 인권과 자유가 없는 착취 그 자체 였지요

그들은 주인에게 온갖 횡포를 당해고 설사 죽임을 당하더라도

가만히 있을수 밖에없는 짐승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노예이지요


예를 들어 대표적인 노예는 미국의 흑인 노예를 들수 있어요

그러나 조선시대 노비(奴婢)는 그렇지는 않았지요 조선의 노비는 크게 관노비(官奴婢)와 사노비(私奴婢)로 나뉘고

사노비(私奴婢)는 다시 솔거노비(率居奴婢)와 외거노비(外居奴婢)로 나뉘었어요


사극에서 항상 등장하는 노비가 주인과 함께 살며 집안일을 거드는

솔거노비(率居奴婢)인데 실제로는 외거노비(外居奴婢)의 비중이 더 많았다고 하지요

주인 입장에서 보면 노비를 수십명씩 먹이고 입히며 사는 것은 꽤나 큰 부담이었고

밤에도 자유를 억압당하는 경우가 있어 외거노비를 많이 택하였어요


특히 조선초 토지의 경작을 위해 '작개(作介)'라는 풍습이 있었는데

작개는 지주가 노비들에게 전답을 분급(分給)하여 주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 책임하에 경작케 하는 방법으로 15-6세기에 여러 지역에서 행해지던 경작 방식이었지요

지주는 자신의 사유지를 노비로 하여금 경작시켰으며 이 땅에서 나는 수확물의 일부를 노비가 갖도록 하였어요

그러므로 조선의 노비는 자유와 함께 재산을 축적할수도 있었으므로

관아에서는 이들 외거노비에 대한 호구조사를 벌여 조세를 부과 하기도 하였지요

그러므로 노비는 주인에게 착취를 당하더라도 일에 대한 댓가를 받을수 있었고

주인은 함부로 자유를 뺏거나 노비를 죽이지 못하였어요

그러나 '작개'라는 이 풍습은 약간의 변형기를 걸처 내려오다가

소작농(小作農) 또는 도지(賭地) 형태로 바뀌어 아직도 실행되고 있지요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링컨대통령이 노예를 해방 시켰지만

한국은 갑오경장 이후에 사회 정치 모든 것을 개혁하면서

그때부터 노비들의 신분도 바뀌기 시작했지요

이때 노비들도 성씨를 만들었으며 돈만 있으면 양반 행세도 하였지요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경장의 변혁기를 거치면서 노비문서는 불태워지고

청상과부(靑孀寡婦)의 재가(再嫁)를 허용하는 등 최하층 노비들에게도

생활상이 바뀌기 시작했으며 그 동안 억눌려 있던 인권이 살아나기 시작하였어요


그렇게 사회적 변혁기가 오고 시대가 바뀌자 양반가 또는 시골의

대지주들은 노비가 없어지자 일을 시킬려면 머슴을 고용해야 했어요

1년동안 일하여 주는 머슴과 바쁜 농번기때만 일하기로 하는 계절치기 머슴 등이 생겨났으며

보통은 대지주 집에서 1년 동안 기거 하면서 일을 하여 주는 머슴들이 많았지요


그러나 머슴은 종(奴)이 아니었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일종의 계약직 직장인으로 봐야 하지요

머슴은 음력 설을 쉬고 정월 대보름전에 대지주 집에 머슴을 살러 갔어요

그리고 12월 22일 동지죽을 먹고 주인집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머슴은 일년 단위로 고용되던 머슴, 달 또는 계절로 고용되던 달머슴[月傭]과 반머슴[季節傭]이 있었어요 


고지(雇只)머슴이라는 특수한 형태도 있었는데 일정한 토지나 가옥,

또는 식량을 대여받고 고용주를 위하여 일정 기일의 노동을 하거나

일정 작업량을 수행해 주는 방식 이었지요

머슴에게는 일년간 월급을 한꺼번에 주는데 그것을 "새경"이라 했어요

머슴도 일을 잘 하면 상머슴, 어중간 하면 중머슴

10대들이 밥만 얻어 먹고 잔일이나 하는 꼬마둥이 머슴(꼴담살이)이 있었는데

60년도 초반만 하더라도 일을 잘하는 상머슴의 1년 새경이 쌀 90킬로들이 10여 가마를 받았다고 하지요


그당시 9급 공무원의 한달 월급이 쌀 90킬로들이 1가마 정도였으니

먹고자는것 까지 합치만 공무원과 비슷한 새경을 받았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그 동안 금지 되었던 청상과부들의 개가가 허용되고

많은 노비들이 당당하게 성씨를 가지면서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점차 성(性)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기 시작 했지요


  그래서 과부집 머슴은 새경을 많이 안 주어도 너도 나도 갈려고 인기가 높았다 하는데

한번 과부에게 뽑힌 머슴은 몇년씩 그 집에서만 머슴살이를 했다 하네요

새경도 많이 안 주었다는데 어찌하여 몇년씩 있었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ㅎㅎㅎ


그러다 보니 일 잘하는 과부집 상머슴은 인기가 좋았는데

"일꾼살이 간다"는 말보다는 "머슴살이 간다"고 말했지만

"뉘댁 머슴" 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뉘댁 일꾼"이라고 호칭을 순하게 불렀지요

주야로 일을 잘하면 호칭도 바뀔수 있는 것이지요 ㅎㅎㅎ


어찌되었든 머슴이란 말은 순수한 우리 말이긴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고공(雇工)" 이라 부르기도 했어요

갑오경장 이후 노비들이 모두 해산되고 그 결과로 머슴이란 새로운 직장이 생겨났으며

이들 머슴들은 갑오경장 이전만 하더라도 성씨없는 사람이었는데 이들도 성씨를 만들고

남의 족보를 통채로 사서 양반이 되기도 하였으며 아니면 돈을 주고 남의 족보에 끼어넣기를 하기도 하였지요


그러니까 몰락한 양반집에 돈을 주면 슬그머니 족보에 끼어 넣어준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우리말로 '부치기'라 하였어요

이때 가장 많이 만들어진 성이 김(金),이(李),박(朴) 이라 하지요

그래서 우리나라 3대성이 김,이,박이 되었다 하네요

  지금도 시골에 가면 어느 집안이 아전이고 백정(일부지방 하추나)이며

단골내미라는 것이 지역사회에 남아 있기도 하지요 그

러나 현대에 사는 요즘 누가 그런것을 따져 무엇하겠어요 그

저 열심히 노력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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